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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기분 나빠도 되는 건지 봐줘”,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잘못한 거야” 혹시 앞의 세 가지 말 중에 한 가지라도 말해봤거나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건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가스라이팅은 알아채기 어렵고 굉장히 교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내면을 좀먹고 있다.
“네가 착각한 거야”, 과연 그럴까?
영국의 한 작가인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이 1938년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스릴러 연극을 한 편 선보였다. 가스라이팅의 역사는 바로 이 연극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아내 폴라와 남편 잭. 잭은 고가의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위층에 사는 부인을 살해한다. 하지만 정작 보석을 찾지 못한 잭은 아무도 모르게 위층을 몰래 뒤져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어두운 집안에서 작은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가스등을 켜야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 시절 건물은 가스를 나눠 쓰기 때문에 한 집에서 가스등을 켜면 다른 집 가스등이 약해진다는 것.
잭이 위층을 몰래 뒤지는 것을 알 리 없는 폴라는 가스등이 약해지고 위층에서 소리가 난다며 불안해하지만, 잭은 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부터 잭은 지속적으로 폴라를 교묘하게 심리적으로 조종하기 시작한다.
그는 폴라의 감각이나 판단에 “틀렸다”, “착각이다”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하지 않은 일에 누명을 씌우며 그녀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정신이 온전치 않다고 폴라와 주변인들을 속이고 더 나아가 그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간다.
결국 폴라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모든 판단을 자신이 아닌 남편 잭에게 의지하고 기대게 된다.
미국의 정신 분석가인 ‘로빈 스턴(Robin Stern)’이 극 중에서 폴라가 잭에게 당하는 정신적 학대와 심리적 가학 행위를 가리켜 극의 이름을 딴 '가스라이팅(Gaslight Effect)'이라는 심리학 용어를 만들었다.
즉, 가스라이팅(Gaslight Effect)란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방의 행동이나 생각 등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것을 말한다. 물리적 폭력 없이 이루어지는 정신적 폭력으로, 피해자는 판단력이 흐려져 스스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인지 인지하기조차 어려워진다.
가스라이팅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종하는 데 자주 쓰는 방법이 있다. 이는 대부분이 피해자를 위한다는 달콤한 말과 함께 그들의 판단을 혼미하게 만든다.
• 저지하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피해자의 주장이나 의견을 듣는 것을 거부하거나 혹은 피해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피해자가 주장을 펼 수 없게 만든다.
• 반박하기 🤔“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
피해자의 기억력이나 인지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의심한다.
• 차단하기 🤗“그 얘긴 그만하고 다른 얘기 하자”
피해자의 생각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피해자가 더 의견을 표현할 수 없도록 주제를 돌린다.
• 폄하하기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피해자의 감정이나 생각, 필요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다.
• 망각하기 😒“내가 언제 그랬어?”
가해자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 척하거나 과거 피해자와 동의한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달콤한 말이 숨겨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스라이팅은 매우 교묘하고 알아채기 어렵다. 실제로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도 자신이 피해자인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가?
•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ex. 자신이 너무 예민하다던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 자신과 가스라이팅 가해자와의 관계가 혼란스러운가? (ex. 그 사람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종종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 가스라이팅 가해자와 함께 있을 때 의도치 않은 논쟁을 하게 되는 것 같은가? 그 논쟁에서 자신이 진척 없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 자신의 생각, 감각, 믿음에 대해 모호하고 불분명한 기분이 드는가?
• 항상 사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지는 않은가?
위 질문들 중 자신은 몇 개나 해당하는지 세어보자. 이미 당신의 깊은 내면에서는 적색 경고 신호가 울리고 있다.
자신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문제 인식하기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 자신이 느낀 것을 의심하지 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은 가스라이팅의 대표적인 반응이다. 내가 본 게 맞을까? 내 생각이 틀린 걸까? 당신은 끊임없는 자책과 자기 검열에 들어갈 것이다. 숨을 잠시 고르고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자. 그리고 자신을 믿어보자.
• 기록하기
순간의 감정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상황과 오갔던 대화 등을 기록하고 차분해졌을 때 다시 한번 돌아보자.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 놓아주기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가해자가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대단해 보이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잃게 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소중한 사람일 리 없다.
• 작은 결정을 내리는 것부터 시작하기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첫 발을 내디뎌야 하는 법.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하자.
•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가해자는 내 의견, 내 감각이 항상 틀렸다고 말한다. 과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까?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의견을 구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가스라이팅은 연인이나 파트너 사이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보호자와 피보호자, 선생님과 제자, 직장 상사와 부하, 친구 사이 등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나락으로 빠뜨리려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 것은 아니다. 그들이 당신을 손아귀에 넣고 조종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악의적인 목적이 없을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가스라이팅이 애정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니 상대방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당신이다. 당신이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생각, 믿음, 가치관을 의심하게 만들고 당신을 통제하려 든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그 불건전한 관계를 고치거나 끊어낼 자격이 있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상대방의 동의와 인정이 없다면 마치 나 스스로가 조각을 잃어버린 불완전한 퍼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잘 살펴보자. 과연 그 퍼즐 조각이 내게 꼭 필요한 조각일까? 아니,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하다.
• 유독 한 사람과의 관계 이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게 된다면 가스라이팅을 의심해 보자
• 가스라이팅은 악의적인 목적이 없을 수도 있다
• 전문가의 조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아정체감을 가질 때, 우리는 자유를 향해 첫발을 내딛게 된다."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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